초록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급등하기 시작하여 1998년 3/4분기의 경우 7.7%에 달하는 등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실
업대란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급속한 경기회복과 집중적인 실업대책으로 말미암아 전반적인 실업률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외환위기동안에 정부부처와 언론계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노동시장은 본질적으로 재화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 파생된 시장임으로 노동시장은
이들 시장들의 부침에 따라 자동적으로 연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는 정부정책에도 반영되어 노동시장정책의 기본방향이 경기부양을 촉진하는 차원에
서 이루어지고, 예컨대 실업대책의 메뉴도 공공근로와 같이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정책들에 초점을 맞추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금융부문, 공공부
분, 노사부문, 기업부문의 정부개혁방향을 살펴보더라도 기업부문과 금융부문의 안정화가 이루어지면 노동시장의 안정화도 달성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
이다. 노동부문의 개혁의 기본방향도 대부분 노사관계개혁 내지는 노동법개정만을 의미하지 노동시장의 구조를 파악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한 기존정책
을 평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처방을 위한 실증적인 연구들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본고의 여러 절에서 다각도로 진행되는 실증분석은 노동시장이 파생시장(derived market)으로서 경기순응적인 측면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서
는 안되며, 노동제도 등 노동시장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경제위기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케 할 수 있고 그 효과도 재화시장
이나 금융시장에 비하여 우리경제에 보다 지속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본고의 논의는 외환위기의 고통을 누가 더 많이 부담했다는 식의 고통분담(pain sharing)에 관한 논의도 아니고 경제위기가 형평
성(equity)를 훼손했다는 류의 논의도 아니다. 외환위기가 우리노동시장에 미친 효과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우리노동시장 유연화 방향의 현주소
를 정확히 파악해 보자는 의도에서 본고는 시도된다. 후술되겠지만, 본고의 다양한 실증분석 결과를 토대로 필자들은 적어도 노동시장에서만큼은, 일
반 금융시장이나 재화시장과는 달리, 경제위기의 악영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즉 경제위기로 인한 노동시장 경제효율성의
훼손은 미래의 국가경쟁력과 기업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정부 노동정책의 청사진을 마련하는데 있어 경기가 회복되면 자동적으
로 회복될 것이라는 `칼로 물베기식'' 입장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위기동안에 노동정책이 노동시장 구조변화에 적절히 대응하
기보다는, 지나치게 경기부양의 측면에서 혹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온 점, 최근 비정규직 증가와 효율성 변화에 대한 논의가 한국노
동시장의 구조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문제점들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시장 비효율성의 지속성여부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정확히 계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각도에서 심층적으로 살펴 본 본고의 실증분석 결
과들은 이러한 가능성이 크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도출케 한다. 예컨대 최근 국내노동경제학계에서 일고 있는 `비정규직 함정론''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
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일단 비정규직에 종사하게 되며 정규직으로 재취업이 어려워지고 직무능력이 낮고 인적자본형성기회가 낮은 업무들에만 배치되
어 계속적으로 비정규직을 떠도는 근로자군을 양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본고의 실증분석결과에 의하면, `비정규직 함정''이 글자그대로 함정인지 혹
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a bridge of no return)''인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이르나 적어도 비정규직의 직장경험은 미래노동시장 성과
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과학적인 추론은 가능하다. 이러한 실증분석 결과를 토대로 할 때, 가령 경제위기동안에 취업난으로 인하여 비정규
직으로 취업한 청년 노동자의 경우 남은 잔여 생애근로기간동안에 인적자본 형성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저생산성에 대한 노동시장 오명효
과(scarring or stigma effect)로 인하여 생애경로가 비효율적인 방향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는 국가경제적으로 지속적
인 노동시장의 비효율성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본고의 실증분석 결과에 의하면 경제위기동안에 심화된 우리나라 노동시장불안정성 정도가 미국의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전혀 나타나지 않을 정도
의 높은 수준의 불안정성 정도이며, 특히 장기근속자의 비중은 유연한 노동시장 구조를 가진 미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을 나타낸다.
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노사간 합치에 의하여 장기근속이 주는 경제효율성이 파괴되어가는 단면이라고 주장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 것
이 사실이라면 재화시장이나 금융시장의 회복과 함께 적어도 노동시장의 실업률 수준은 회복될 지라도 인적자원의 효율적 배분 내지는 활용이라는 측면에
서는 보이지 않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속적으로 물어갈 가능성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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